옥탑방의 객

일회용 라이터 쓰레기 만들어 내는 흡연자의 고뇌, 지포라이터 사용하여 소모품 교체하기.

gaek 2025. 3. 3. 20:14

(긴 글 주의, 아래에 사진 있음.)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었던 내가 매일같이 드나들던 술집이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하루 일정이 끝나면 일정처럼 가던 곳. 그 강원도 어느 시골 읍내의 작은 호프집이었으니, 그 이름 "마술"이다.

그 호프가 지금도 운영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씩 명절 때나 본가를 왕래하며 봤던 그곳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문 앞에 나와 앳된 젊은이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것을 보고 짐작했다.

아무튼 기본 안주 계란후라이를 돈 없는 나, 친구들에게 욕 한 바가지 덤으로 몇 번씩이나 더 해주셨던 그 사장님 덕에 쓰디쓴 소주를 계란후라이 안주로 달래던 것은 지금도 나의 좋아하는 혼술 거리다. 그 때문에 내 동거인은 나를 위해 자주 계란후라이를 부친다.

 

이야기가 또 샜다. 아무튼 대학도 가지 않고 그림만 그려대던 시절이었으니, 곧 상근예비역 영장이 집으로 나왔고, 그런 거 하기 싫다며 더 빠르게 입대할 수 있는 다른 곳에 지원했다. 면접과 체력 테스트까지 덜컥 보고 합격한 탓에 다음 달이면 입대하는 것이었다. 그 "마술"에서 자주 퍼마셨던 나는 입대 날짜가 확정되자 더욱이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불러 폭격기처럼 퍼마신 시절이다. 그 작은 술집에서 바쁘지 않을 때면 우리들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들으셨겠던 사장님은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에 잘 다녀오라며 상자 하나를 주셨는데, 그 상자 안에 지포라이터가 있었다. 정품이 아니라 Made in China 휘발유 라이터. 앞에 "마술" 로고가 프린팅된 라이터.

 

약 십 년 정도 본가 내 방 어느 서랍에 묵혀있던 그 라이터를 본가 이사하던 날 짐 정리하다가 발견하고 지금의 옥탑방으로 가져온 지도 몇 해가 지난 것이다. 그간 나름 쓰레기를 덜 생산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가져갔던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며 일회용 라이터 쓰레기가 너무 많은 것이 고민이다. (일회용 라이터는 재활용이 불가하다. 일반쓰레기로 분류한다.) 그래서 기억에서 끄집어 낸 그 메이드 인 차이나 지포라이터를 꺼냈고, 동네 마트에서 라이터용 기름을 구매해 넣어본 것이다. 잘 된다. 기가 막히게 잘 된다.

하지만 그도 한 달을 사용했더니, 불이 안 붙는다. 역시 메이드 인 차이나라 그런가, 다시 일회용 라이터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아! 이것도 소모품이 있구나. 그 소모품을 교체해야 하는구나!

 

지포라이터(휘발유 라이터)의 소모품은 부싯돌, 솜, 심지, 펠트, 부싯돌 스프링/휠, 오일 등이 있다.

 

부싯돌은 라이터의 휠을 돌리며 마찰을 만들어 불꽃으로 오일 머금은 심지에 점화하고,

부싯돌 스프링은 부싯돌을 밀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솜은 라이터 내부에 오일을 충전할 때 머금으며 그 사이 심지에 오일을 전달한다.

심지는 솜 사이에서 오일을 빨아들여 라이터의 휠 옆, 구멍으로 이어져 점화 시 불이 붙는다.

펠트는 라이터 내부에 채운 오일을 밖으로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가스켓 역할을 한다.

오일은 비등점에 따라 휘발유 혹은 등유로 구분하기도 한다.

 

 

 

문제의 메이드 인 차이나 오일 라이터, "마술" 호프의 각인은 거의 지워졌다.

 

한 달 남짓 사용했는데 이렇게 낡았다. 인서트와 케이스를 분리하자. 오일과 철 가루가 떨어질 수 있으니 휴지 같은 받침을 해주는 것이 좋다.

 

인서트 하부, 부싯돌 스프링 볼트를 풀어주자.

 

부싯돌 스프링을 풀어, 펠트를 빼고, 오래된 솜과 심지를 분리한다. 이렇게 하면 인서트 내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해체한 마당에 부싯돌도 뺐다. 이렇게 많이 닳아 있다. 교체하도록 하자.

 

심지가 아직 긴 것이 아까워서 끝을 잘라 재사용하려 했으나, 구멍에 넣기를 실패. 버리기로 한다.

심지의 끝이 거멓게 타게 된다면 조금씩 당겨서 끝을 잘라 사용한다고 한다. 단,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서트 윗구멍에서 집게로 집어 당긴다.

 

인터넷에서 구매한 솜+심지+펠트 세트다. 1,600원. 배송비는 3,000원이다. 지포라이터 정품은 질이 좀 더 좋아 보이지만, 저렴한 것부터 써보려 이 세트를 구매했다.

이제 솜과 심지를 인서트에 넣자. 넣는 방법은 솜을 하나씩 욱여넣으며 긴 심지가 S자 형태를 그릴 수 있도록 안착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얇은 집게 같은 집기가 필요하다. 당황하던 찰나에 동거인이 지점토로 뭘 만들겠다며 사둔 손톱 정리도구(?)를 사용했다. 이게 있어서 다행이다.

 

동거인이 구매한 지점토 손질을 위한 손톱 정리도구(?)다. 지포라이터 인서트에 솜을 배치하기에 딱 알맞다.

심지를 우선 인서트 윗구멍에 맞춰서 적정한 길이로 배치해 두고, 솜을 안쪽부터 빼곡히 채워 넣는다. 심지가 S자 형태를 그려야 하는 것이 중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그림을 그렸다.

 

빨간 선이 심지다. 손을 이런 식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심지와 솜을 다 채웠다. 이제 저 구멍, 부싯돌 스프링을 결합할 것이다. 부싯돌도 새것으로 교체한다. 부싯돌 스프링은 구매하지 않고 기존에 쓴 것을 다시 결합했다.

 

솜 펠트로 결합하려 했지만, 고무 가스켓이라는 것이 궁금하여 함께 구매했다. 그러니 고무 펠트로 교체하자.

결합은 마쳤으니 이제 오일을 채워 넣자.

 

동네 슈퍼에서 구매한 라이터 오일이다. 바로타라는 제품이다. 용량은 190ml, 값은 약 2,500원 정도로 기억한다.

정품 지포 오일은 불순물이 거의 없는 최상급 오일인 반면에, 이 바로타 오일은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저품질 오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성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다. 불순물이 많으면 특유의 냄새가 있고, 그을음도 많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타 오일의 장점은 기화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다음에는 지포 오일을 사용해 보려 한다.

 

소모품 교체를 완료하고 불을 켰다.

심지를 너무 길게 뺐다. 다음에는 적당히 배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