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할 식

[김포 구래동] 김포에서 만난 작은 일본, 한일 부부의 정갈한 일식집 "히토에", 왜 우리집 앞에는 없지? (이자카야/꼬치구이)

gaek 2025. 2. 19. 00:00

설 연휴, 폭설 소식으로 본가에 갈 수 없던 나는 동거인과 기막힌 휴일을 보내고 싶었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맛있는 식사를 찾아 오후까지 보낸 후 귀가하여, 연휴의 짧은 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며 길을 나섰다.

잦은 야근으로 인해 휴일에는 누워만 있을 수밖에 없던 몸뚱이지만, 며칠을 쉬는 이 연휴에 드디어 기막힌 술 한 잔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난 것이다. 때마침 연휴에도 불구하고 운영한다는 일식집, 몇 주 전부터 동거인이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마산동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을 이동해 10분 정도 걸어가니, 연휴라 한적한 도로에 아주 작게, 소박하게 불 켜진 간판을 발견했다.

 

  • 히토에 (ひとえ) -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4로 543 103호 (구래동 6879-5)

 

 

히토에의 간판과 출입문이다. 텅 빈 거리 속에 가장 따뜻해 보이는 모습의 가게다.
사진이 또 흔들렸다. 거리에 눈이 쌓이고 얼어서,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다. 날이 추우니 얼른 들어가야 한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좌측 벽면에 안내 문구가 있다.

 

입구 바로 앞에 벤치 의자가 있어서 취기가 있는 흡연자들이 앉아서 흡연하는 경우가 있나보다. 바로 옆의 출입문이 열리면 연기나 냄새가 쏴아-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명시되어 있는 흡연장소로 이동하여 흡연하도록 하자.

만석 시에 2시간 30분으로 이용시간이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두 시간이 지나면 라스트 오더를 묻는다고 하니 알아서 시간을 안내해주실 것이다. 동거인과 나는 나름 다양한 메뉴와 술을 여유롭게 마셨다고 생각했는데도 2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한 거 같다.

 

 

 

동거인과 내가 앉은 자리다. 우리는 내성적이어서 구석을 좋아한다.
앉은 자리의 뒤에는 자리별로 옷걸이가 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런 세심함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메뉴판의 첫 페이지를 찍었다. 이따구로 찍어서 미안하다.

 

오늘의 첫 손님인 거 같다. 아무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여, 사진 찍기가 부끄러웠다. 잘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자주 부끄럽다. 그래서 사진이 이모양이다.

일본어 히토에는 쌍커풀이 없다라는 뜻이 있지만, 한자로 풀이하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음식을 주문하자 나온 밑반찬이다. 뭐라고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는 청각도 내성적인가보다.

 

일식의 기본정신, 꼬치 메뉴다.

 

오늘의 추천 꼬치 5종을 주문했다. 선택은 불가하고 주는 대로 먹으면 된다. 우리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본 메뉴다. 일본어로 뭐라뭐라 적혀있지만 알 수 없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이드나 요리 메뉴일 것이라 짐작했다.

 

나는 두부에 환장하는 사람이다. 일식으로 두부를 먹어본 적은 없기에, '일본식 튀김'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아츠아게를 주문했다.

 

 

주문한 술과 함께 나온 아츠아게다. 정갈한 요리처럼 보인다.

 

동거인은 삿포로 생맥주를, 나는 고구마소주라고 쓰인 사케 '콘노'를 한 잔 주문했다.
사케의 메뉴판이다.

 

내가 주문한 콘노는 록쿠와 소다와리라고 두 종류로 나뉘는데, 여쭤보니 록쿠는 50ml 한 잔에 얼음을 넣은 것이고, 소다와리는 얼음과 탄산수를 섞어 나오는 것이라 한다. 나는 온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록쿠로 주문했다.

 

 

내주신 추천꼬치 5종이다. 좌측부터 다리살, 목살, 명란가슴살, 방울토마토삼겹, 양송이삼겹이다.
꼬치와 곁들일 양념 같은 것이다. 동거인에게 물어보니 유즈코시라고 한다. 유즈코시의 뜻은 유자소스다.
꼬치 하나를 다 먹기 전에 콘노 한 잔이 없어졌다. 한라산을 주문했다.

 

콘노로 취기를 원한다면 여덟 잔은 마셔야 시작될 것 같다. 그러면 4만원부터 시작이다. 소주를 주문해야 했다.

이제야 술이 들어오는 것 같다. 우리 다음으로 들어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소주를 주문한다. 아, 그래 여기는 한국이지.

 

 

닭다리살 꼬치인 '모모'다. 간이 잘 베어 짭조름하고 야들야들하다.
닭목살 꼬치인 '세세리'다. 이 역시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야들야들함이다. 우리는 연신 감탄을 했다.
명란가슴살인 '멘타이무네'다. 닭가슴살의 퍽퍽함을 마요네즈와 명란이 조화롭다. 나는 가슴살의 맛이 덜 느껴져 아쉽지만, 동거인은 잘 중화되어 훌륭한 요리라며 감탄했다.
방울토마토삼겹이다. 얇은 삼겹 속에 풍부한 방울토마토의 채즙이 입안에서 수영을 한다. 향긋한 입욕제를 넣은 스파 욕조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양송이삼겹이다. 이 또한 양송이 겉에 얇은 삼겹을 감쌌는데, 삼겹의 짭조름함을 양송이의 채즙으로 달래주는 듯한 황홀감이 밀려오는 맛이다.
아껴두었던 일본식 두부 튀김 '아츠아게'다. 얇은 튀김옷의 식감 속 부드러운 두부의 향이 나를 더 즐겁게 한다. 꼬치로 인해 춤추는 입안을 경찰관이 와서 중재해 주는 듯하다.

 

 

찍은 사진을 보다가 아까 잘못 찍은 메뉴판 첫 페이지를 다시 찍었다.
우리는 계획대로 오뎅 메뉴를 펼쳤다.

 

메뉴판 속 일본어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검색하며 선택했다. 그리하여 무와 한펜을 주문했다. 한펜이란, 흰 생선살을 주 재료에 마를 섞어서 쪄낸 어묵의 한 종류라 한다. 초록창 검색으로 알아냈다.

 

메뉴판에 있는 또 다른 사이드 메뉴다. 먹을 만치 먹으면 야키 오니기리를 주문할 계획이었다.

 

바로 나온 오뎅, 한펜과 무다.
가까이 찍은 사진이다.

 

한펜을 숟가락으로 잘라 연겨자를 찍어 먹었다.

 

정말 신기하다. 두부 같은 연함이 있지만 단단히 뭉쳐졌다. 맛은 슴슴하고 씹을수록 살살 녹는 느낌이다. 연겨자와도 어울리고, 오뎅 국물과도 천생연분이다. 음, 유부의 식감과 가장 유사하다. 입이 즐겁다.

 

무다. 무는 역시 시원하다.

 

 

그리고 메뉴를 다시 펼쳐 많은 고민 끝에 '치킨남반'이라는 요리를 주문했다.
치킨남반과 함께 주문한 진저 하이볼. 신기하게 일식과 잘 어울리는 주종이다.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도 뿌려먹을 수 있다. 그래서 사진 찍었다.
주문한 '치킨남반'을 가져다 주셨다.
음식이 예쁘다.
좋아하는 양배추가 함께 나오니 더 즐거울 수밖에 없다.
치킨남반의 닭튀김이다. 나는 지금도 침이 고인다. 술이 모자랄 지경이다.

 

동거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왜 우리집 앞에는 이런 가게가 없느냐고. 일식집 히토에는 그런 곳이다. 잦은 야근 덕분에 이동시간이 걸리는 곳을 피하게 되는데, 우리집 앞에 있다면 주 1회 이상은 갈 것이다. 그렇고말고.

 

 

 

 

풍만한 마음을 안고 귀가한다.

 

 

  

동거인이 찍은 사진이다. 주인장께서 마스크 속으로 미소 짓고 있다고 한다.

 

 

 

배고프다. 곧 다시 가야겠다.

 

 

 


  • 히토에 (ひとえ) -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4로 543 103호 (구래동 6879-5)

히토에 영업시간 - ( https://naver.me/F6lX7fge )

월화수목금토 17:00~00:30 (라스트 오더 23:30)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